자료실

[인권]201510 감옥에서 보내 온 편지 : 자유의 날을 기다리면서
관리자 498 2015.09.25


<자료출처:인권재단사람>


자유의 날을 기다리면서

    

한낮은 제법 더워도 이제 계절은 완연한 가을입니다. 높고 푸른 하늘, 그 깊이가 무척 깊을 것 같은 파아란 하늘을 매일 봅니다. 여기서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때는 운동시간뿐입니다. 운동 나가고 들어오면서 또 운동하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입니다. 바쁘시더라도 가끔 파아란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가을이 와 있습니다.

    

안녕하셨는지요? 추석 명절도 잘 보내셨겠지요? 넉넉한 추석이었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어도 그리운 사람 반갑게 맞는 그런 하루였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기서 잘 있습니다. 지난번 편지를 보신 분들이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외로움을 타는 것도 같고 힘들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하면서요. 솔직히 갇혀서 사는 생활에 왜 어려움과 힘듦, 외로움이 없겠습니까. 다 견뎌내고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감옥살이 경험이 많아서 잘 견뎌내는 중입니다. 저의 이 편지를 받아보실 때쯤이면 이곳에서 추석 명절을 지낸 뒤이겠네요. 저는 연휴가 길어지면서 면회와 운동이 없는 날이 많아서 방 안에서만 주로 살았겠네요. 후원인분들은 추석날 아침에 조촐한 차례상 차려놓고 제를 올렸겠고, 밤에는 창으로 둥근 보름달보고 소원도 한 차례 빌었겠군요. 보름달 보고 무슨 소원 빌었나요? 간절한 마음 담아서 소원 하나씩은 빌었을 것이고, 그 소원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인권활동가들에게 추석 명절 선물 보내기는 잘 진행되었는지 궁금하군요. 보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서 진행되었기를 바래봅니다. 어느 활동가가 재단 덕분에 명절에 선물 들고 집에 가게 됐다고 제게 편지를 보내왔어요. 저는 한 것도 없는데 좀 민망했지만, 재단에 고맙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활동가 한 명 한 명이 너무도 소중한데 그들이 전망을 갖고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내년부터는 인권활동가들에게 긴요한 지원을 할 수 있게 365기금이 올해 안에 잘 조성돼야 할 텐데요,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 걱정입니다.

    

올해로 제가 인권운동만 27년 차고 50대 중반입니다. 지금까지 인권운동의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데는 주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때는 원고료를 벌어서 집에 보태느라 고생도 했지만, 어느 때부터는 제가 고생한다고 친구와 선후배들이 후원금을 매달 모아서 보내주었지요. 너무 고마운 일이라서 그렇게 받는 후원금은 개인적으로 안 쓰고 여러 단체들 후원하는 데 씁니다. 단체들이 다 열악하잖아요. 한 번은 10년 차 활동가가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어요. 활동하는 게 의미도 있고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활동인데, 솔직히 “지친다.”고 그러더군요. 이 활동가가 지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요. 단체 재정이 열악하니까 상근 활동가를 늘리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10년 동안 쉬지도 못하고 달려온 거죠. 그렇다고 전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월세는 자꾸만 올라서 내년엔 활동을 쉬면서 돈을 벌어야만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고, 언제까지 이런 조건에서 버티면서 활동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거지요. 이런 고민 듣는 심정이 착잡해집니다. 그래서 활동을 쉬기로 한 건 잘했다고 말하고, 출소하면 만나서 의논을 하자고 했습니다. 인권운동 해왔고 앞으로도 인권운동 하며 살아가야 할 활동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절박해집니다. 의지만으로 버티는 데 한계가 있지요. 그 한계에 봉착해서 절망감을 갖고 활동을 접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지요.

    

출소 뒤에 재단에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후배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지요. 그 첫걸음이 ‘365기금’ 만드는 일인데, 그 일에 집중할까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관심 갖고 함께 해주셔야 합니다.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세상 소식(뉴스)은 잘 보고 있습니다. 신문과 주간지, 매일 뉴스 방송을 다 보니까요. 국제적으로는 난민 문제,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안보법안 통과 문제가 중요한 이슈네요.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금리를 언제 인상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이고요. 국내에서는 정부가 밀어붙이는 이른바 ‘노동개혁’이 걱정이 아닐 수 없군요. 어느 분이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정규직의 보호 장치를 허물어뜨려 그중 사자 몫은 기업 측이 챙기고, 비정규직에는 토끼 몫, 청년실업자들에게는 다람쥐 몫 정도를 줄 것만 같다.” 정확히 짚고 있는 거지요. 철저하게 거대기업, 재벌만 보호하고, 노동자들은 그나마 있는 권리조차 무력화시키겠다는 거지요.

    

이거 못 막으면 큰일인데, 더 큰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를 덮칠 텐데 하는 걱정을 매일 하면서 지냅니다. 어떻게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까요?

    

이런 걸 생각하면 정치개혁이 확실하게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의 기득권 양당 정당으로는 바람직한 정치가 불가능하니까요.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가고는 합니다.

    

 

    

참 저의 첫 재판이 10월 14일로 잡혔습니다. 구속된 지 3개월 만에 열리는 재판이지요. 요즘은 한 달 만에도 재판이 시작되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이런 일정으로 진행되면 12월쯤에 1심 선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때 집행 유예라도 받아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암튼 재판 잘 받을 수 있게 응원 바랍니다. 저도 준비 잘하겠습니다.

    

요즘 일교차가 10도 이상씩 벌어집니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이번 가을에는 종종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하늘을 보면서 자유의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 9. 20. 서울구치소에서 박래군 드립니다.

    







<img

목록
이전글 [연구집]여성장애인의 건강권- 여성장애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다음글 [논문]여성장애인 취업에 관한 고용주 인식 연구
  • 마리아의전교자 프란치스꼬회
  • 윤리경영
  • 뷰티풀도네이션
  • 나눔실천
  • 푸코네쉼자리 가족피정센터
  • 오시는길